독일의 기본법

가아닌양| 뉴스 움벨트|2019. 5. 11. 04:10

지난 5 8일 독일의 기본법(Grundgesetz)은 탄생 70주년을 맞이했다. 다른 나라의 헌법(Verfassung)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독일의 기본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분단시절 서쪽의 연합국 점령지역에서 탄생했다. 기본법이 헌법이 아닌 기본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당시까지만 해도 동서 분단체제를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하 글은 독일 Süddeutsche Zeitung지에 실린 독일 기본법 70주년 관련 글 중 일부를

번역한 것이다.

https://www.sueddeutsche.de/leben/grundgesetz-verfassung-geschichte-jahre-1.4428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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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공화국은 독일인의 오만이 만들어낸 재난과 함께 탄생했다. 그들은 먼저 아주 짧은 시간동안 존재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을 파괴했으며, 그 다음으로 전 유럽과 세계의 일부를 전쟁과 파괴로 뒤덮었다. 나치와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그들이 즐겨 소리높여 말하던 다른 모든 것 위에 있는 그 자신들의 나라를 거의 완벽하게 파괴했다. 물질, 도덕, 정신, 그 모든 것을 파괴했다. 1945년 독일에 남겨진 것은 미래를 알 수 없는 4개로 분할된 점령지역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일제국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이 국가가 70년이 지나서도 그 당시 새롭게 쓰여진 헌법을 통해 여전히 자신의 존재와 현재를 정의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

 

헌법의 탄생 그 자체는 이미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회의는 19488월 킴제(Chiemsee: 바이에른 지방의 호수)에 있는 섬에서 열렸다. 항상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던 서구연합군은 불신을 갖고 있었고 소련연방은 이 과정을 거절했다. 몇달 간 기민당(CDU)Konrad Adenauer와 사민당(SPD)Carlo Schmid를 주측으로 한 의회 평의회(Parlamentarischer Rat: 당시 헌법과 새로운 국가 창성을 위해 주의회 대표들을 통해 구성된 제헌 위원회)에서 토론이 이루어졌다. 결국 1949년 5 8일 의회 평의회에서 기본법(Grundgesetz)이 통과 되었다. 그리고 연합군 군정과 서독 주의회들의 동의 후에 1949

523일 의회 평의회의 대표였던 아데너워는 기본법을 공표했고, 524일 자정부터 효력을 갖게 되었다.

 

바이에른 주는 당시 기본법에 동의하지 않은 유일한 주다. 바이에른 주는 기본법이 각 주의 이익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바이에른과 같은 반대를 대비해 탈출구를 열어두었다. 기본법은 전체 주 중 최소 2/3가 찬성할 경우 인준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기본법은 기대했던 것처럼 통과되었다. 그리고 바이에르는 결국 우리는 우리다(Mia-san-mia: 이 문구는 축구팀 바이에른 뮌헨의 응원구호이기도 하다)“라는 얼굴로 남게 되었다.

 

사람들은 기본법을 헌법이라고 부르고 싶어하지 않았다. „헌법이라는 표현은 너무 완결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에 비해 당시의 결정에는 너무 많은 독일인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얼마 후 독일 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동독)이 된 소련군 점령지역의 독일인들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 점령지역의 특수한 상황도 있었다. 1957년에 와서야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있던 Saarland가 국민투표를 통해 독일 연방에 편입되었다.

 

기본법은 새로운 독일이 1933년부터 1945년까지의 독일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정신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정신을 오늘날까지 기본법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 평등의 원칙, 언론과 출판의 자유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 뿐만이 아니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시절의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서 그것에 반대하는 조항들이 존재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마지막 시절 독일 제국의 대통령이 수행했던 파멸적인 역할때문에 독일 연방의 대통령은 권력이 없는 자리가 되었다. 또한 1933년 수백만의 독일인이 인종, 정치, 이념 등의 이유로 쫓기고, 감금되고, 살해당하고, 결국 대량학살에 이르렀던 경험으로부터 쫓기는 자들의 개인적인 망명의 권리가 만들어졌다. 이런 배경 때문에 우파와 보수진영에서는 망명권은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고 비역사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AfD의 반환경 선거전략

가아닌양| 뉴스 움벨트|2019. 5. 4. 01:32

https://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afd-setzt-auf-zweifel-am-klimawandel-im-wahlkampf-a-1264532.html

독일의 대중극우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가 자신들을 위한 새로운 정치 주제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그들은 특히 유럽연합과 난민정책에 관한 논쟁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이 기후변화의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통해 그리고 자동차산업의 종말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를 부추기는 방법으로 환경정책 분야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만약 이 주제를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멍청한 것이다“, AfD의 당대표 Jörg Meuthen은 슈피겔지에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환경문제는 이 주제는 AfD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정치인은 사람들을 흔들 수 있는 주제를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주제가 AfD에 도달했다. „디젤을 구하자라는 표어를 단 유럽연합 선거포스터는 AfD의 지역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주문한 주제이다.

 

선거전문가 또한 Meuthen의 전략이 옳았다고 인정했다. ZDF 방송국의 정치트렌드 프로그램인 „Politbarometer“4월 중순 선거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은 환경/에너지 전환외국인/통합/난민분야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주제로 언급했다. „환경/에너지 전환다음으로는 집세/주택시장연금이 뒤를 이었다. 또한 설문조사기관 Infratest dimap에 따르면 환경과 기후보호는 이미 2017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의 89%에 아주 중요하거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독일 노동절 시위에 수만명이 운집하다

곰고민| 뉴스 움벨트|2019. 5. 3. 05:33

독일 노조들은 노동자들에게 전 유럽 차원의 최저임금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자고 요청했다. 주최 측은 또한 더 강력한 단체교섭권을 요구하는 한편, 노동자들이 다가오는 EU 선거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노동절 집회, 독일 라이프치히 (c) picture-alliance/dpa/P. Endig


5월 1일 거리에 나와 노동권 향상을 위한 시위에 나서자는 독일의 주요 노동조합 -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서비스노조(ver.di), 금속노조(IG Metall) 등 - 의 요청에 수만명의 시민들이 행진 참여로 응답했다. 

노동조합들은 전 유럽차원의 최저임금 도입과 함께 개선된 단체교섭권을 요구했다. 집회 주최 측은 또한 연설을 통해,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이뤄지는 다가오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할 것을 요청했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의장 라이너 호프만(Reiner Hoffmann)은 독일 뉴스 통신사 dpa에 "유럽은 평화와 더 많은 번영을 의미한다."라고 전했다. 


유럽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호프만은 디지털화, 글로벌화, 이주, 기후변화와 같은 시스템적인 문제들의 규모가 너무나 거대하며, 따라서 단일 국가의 국민들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에서의 노동은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은 유럽 차원, 전 세계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라이프치히에서의 시위 연설에서 호프만은 또한 독일 노동 시장의 고집스런 동서 분리를 다루었다. 그는 동부의 노동자들이 같은 일을 하는 서부의 노동자들에 비해 더 적은 임금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단체교섭 합의는 다시 모든 곳에서 적용되어야한다"라며 단체교섭권의 격차를 격렬히 비판했다. 

호프만은 다가오는 유럽의회 선거의 중요성을 보다 넓은 차원에서 강조했다. 그는 우익 민족주의자들을 "열린, 민주주의적인, 통일된 유럽의 무덤을 파는 자들"이라고 칭하며, 그들이 의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야아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더 이상 노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노동절]

1880년대에 노동자들이 일일 8시간 노동을 위해 행진한데서 시작된 노동절의 시위는 독일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좌파 단체들 또한 이 날을 경찰과의 결전을 벌이기 위해 이용하곤 했다. 

베를린 시의 관계자는 시위가 통제할 수 없이 격화될 것에 대비해 약 5,500명의 경찰관들이 도시 전역에 배치되었다고 전했다. 

베를린 경찰청장인 바바라 슬로빅(Barbara Slowik)은 수요일 이른 시각 트위터에 "우리의 수도에 있는 모든 이들이 평화로운 노동절을 맞아 각자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남겼다. 

슬로빅은 매년 노동절 저녁에 시위가 열리는 프리드릭스하인과 인근에 약 2 천명의 경찰관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이런 시위가 시위대와 경찰간의 폭력적인 충돌을 야기하기도 했으나, 지난 몇 년간의 노동절 시위는 상대적으로 평화적이었다. 경찰 또한 화요일 저녁의 노동절 전야 집회가 지난 해들과 비교해 조용했다고 전했다. 

원문보기: German May Day protests draw tens of thousands to the streets (DW, 2019.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