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Arbeit)-노동의 위기와 사회주의 이념의 위기(1)

가아닌양| 정치철학의 개념들|2019. 4. 20. 07:04

노동(Arbeit)-노동의 위기와 사회주의 이념의 위기

 

앙드레 고로

 

»사회주의의 위기는 무엇보다 프롤레타리아의 위기다. 다양한 능력 다양한 능력을 보유한 전문기술 노동자들, 곧 자신의 생산적 일을 할 수 있는 주체, 따라서 사회관계들을 혁명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는 그 노동자들과 더불어, 사회주의적 프로젝트를 책임질 수 있고 이 프로젝트를 현실화할 수 있는 계급은 사라졌다. 사회주의의 이론과 실천이 퇴락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그 이유 때문이다.«(1)

 

앙드레 고로가 자신의 저서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을 통해 전통적인 노동자 중심의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주의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지 30여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는 기술의 발전이 기존의 노동자계급을 해체시켰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과 전복이 노동자-자본가의 대립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1960년대 서구사회에서 이미 시작된 전통적 노동자계급에  속하지 않은 비계급(정규직-노동자에 속하지 않은 사람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 비계급은 이미 정치의 출발부터 존재해왔다.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예를 랑시에르가 고대 그리스 시민국가와 농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불화")의 증가는(우리가 흔히 비정규직의 증가라고 이야기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식한 문제가 된지 오래지만, 노동의 위기와 노동자계급의 해체에 대한 담론은 여전히 대안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그리고 앙드레 고로가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에서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국가와 사회는 여전히 불필요한 노동을 생산해내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물론 30년 동안 아무런 대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을 안정적인 어떠한 계급에도 속하지 않은 비계급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해석하려 시도 했으며, 기본소득과 같이 기존 사회주의 이념과 충돌하는 대안이 이제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고로가 이야기한 불필요한 노동-생산관계로부터의 해방은 여전히 요원한 일인것처럼 보인다. 불필요한 노동자들의 생산은 여전히 국가와 사회의 주요 과제이며, 비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필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활동을 노동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두가 노동자가 된, 모든 활동이 노동으로 환원되는 대중사회가 사회주의 이념의 종말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아렌트의 주장은 노동자계급이 해체되었다는 고로의 주장과 정 반대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렌트의 주장 또한 모두가 노동자가 되면서 특수한 계급으로서 사회변역의 주체가 되는 노동자계급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편 앙드레 고로는 프롤레타리아를 호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페미니즘을 기존의 노동-생산 관계를 전복하는 가장 뛰어난 운동으로 호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여성적인 활동(비 생산적 활동)전자본주의 시대의 잔해이기는 커녕, 반대로 후기자본주의의와 후기산업사회의 문화와 문명을 예고한다.“(1-1) 페미니즘은 사회적운동을 노동-생산관계로부터 새로운 관계, 자본과 다른 관계의 문제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기존 가부장적 시대에 여성들이 하던 활동은 경제생산관계에 종속된 한에서만 억압적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탄생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도 사회주의 이념의 붕괴는 심각한 어려움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사회주의 이념의 붕괴는 생존, 삶을 위한 경제적 필요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의 붕괴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전통적으로 사회주의는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해결하기 위한 이념을 제공해왔다. 사회주의가 제공하는 공동체 이념을 대처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안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생존과 삶을 위한 경제적 필요의 측면에서, 국가라는 거대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간편한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의 새로운 시도는 여전히 구시대의 이념을 붙잡고 있는 사회주의 정당의 마지막 외침처럼 들린다. 

 

»Deutschland ist und bleibt eine Arbeitsgesellschaft. Durch den technologischen Wandel wird uns die Arbeit nicht ausgehen, sie wird sich nur stark und immer schneller verändern. Unsere Antwort darauf ist das „Recht auf Arbeit“. Das bedeutet, dass sich die Solidargemeinschaft dazu verpflichtet, sich um jeden Einzelnen zu kümmern und jedem Arbeit und Teilhabe zu ermöglichen – statt sich durch ein bedingungsloses Grundeinkommen von dieser Verantwortung freizukaufen. (Arbeit – Solidarität – Menschlichkeit: Ein neuer Sozialstaat für eine neue Zeit, SPD)

 

독일은 지금까지 노동자사회였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기술의 변화를 통해 노동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가 퇴색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단지 노동의 변화가 강력하고 점점 빠르게 일어날 뿐이다이러한 변화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노동의 권리“이다이는 기본소득과 같은 것을 통해 이러한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 연대사회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연대사회는 각 개인을 돌보고 그들에게 노동과 사회적 몫을 보장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노동-연대-인간성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사회국가독일 사회민주당

 

위 인용문은 2018 2 10일 독일 사회민주당이 발표한 새로운 개혁안의 일부이다“노동-연대-인간성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사회국가”라는 제목을 단 17장짜리 합의문은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는 사민당이 새로운 반전을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독일사회는 지표상의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실업급여화의 약화로 인해 인해 과거 사회국가(Sozialstaat)가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안정감을 상실했다. 이는 또한 전통적인 임금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민주당이 몰락하는 원인이 되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 참조https://umweltkorea.tistory.com/10?category=787270). 하지만 사회민주당에게도 변명은 있다. 사회민주당은 더 많은 노동을 생한해내는 것 외에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목표하는 것처럼 더 많은 일자리가 생산되었고, 국가의 생산력은 증가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이 경제적 필요의 충족이라는 점에서 악화되었다. 그리고 사민당은(사민당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 원인을 안정적인 노동을 생산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 따라서 이번 개혁안에 담긴 사민당의 목표는 안정적인 노동자계급을 재구성하기 위한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사민당은 사회국가의 재구성을 위해 “노동”과 “노동을 통한 사회적 몫”의 보장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그리고 노동사회를 부정하는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안정적인 노동시장의 창출과 이에 걸맞는 노동자들의 교육이라는 사회국가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하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이미 과거의 노동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반증한다위 인용문에 등장하는 것처럼 기술의 변화는 노동이 갖고 있는 성격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따라서 과거와 같이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 일자리 개념은 사회의 발전과 공존할 수 없다따라서 실업과 노동을 위한 재교육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활동이 될 수밖에 없다(이는 사민당의 개혁안 속에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이라는 이념 위에 자리하고 있는 사민당은 “비노동” 상태를 예외상태로 “노동”을 일상의 상태로 구성해야만 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처럼 “비노동”을 일상의 상태로 인정하는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비노동”의 기간은 노동을 위한 준비기간이다.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통 속에서 “노동”은 인류와 역사발전의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인간을 역사 창조의 주체로 존재로 만들어준다(2).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산업 혁명과 프랑스 혁명이후 과거처럼 귀족이나 특정 계급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서 국가와 사회의 원리를 도출해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이제 국가와 사회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신들의 원리를 도출해내야 한다그리고 그것이 노동이다마르크스는 이러한 세계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포착했다(3). 하지만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의 전통 속에서 노동이 사회 변화의 원동력으로서의 의미 뿐 아니라공동체 구성의 규범적 원리로서 작동한다악섹 호네트는 „사회주의의 이념(Die Idee des Sozialismus, 한국어 제목사회주의 재발명)“을 통해 사회적 연대의 기초로서 노동이 가지고 있는 규범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자본주의의 또한 노동에 기초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의 노동은 자기실현과 자기 이익의 관철을 목표로 한다따라서 타자의 노동이 갖는 목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에 반해 사회주의의 이념 속에 노동은 타자를 포함하고 있다각 개인은 자신의 노동 가운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발현 뿐 아니라타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발현을 목적으로 가져야만 한다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노동은 내 자신의 필요와 욕구 뿐 아니라타자의 필요와 욕구를  인정한다따라서 나의 노동은 나와 타자의 필요를 충족 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4). 호네트에 따르면 노동을 통한 상호적 인정은  사회주의의 이념 속에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윤리적 규범이기도 하다.

 

노동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윤리적 규범이라는 것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각 개인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노동이라는 개념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노동을 통해 성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윤리적이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로부터 도출한 것처럼 직업은 현대인에게 지상적 삶을 보증한다.  비록 앙드레 고로가 인간의 일상적 삶이 노동으로부터 분리되고 있다고, 일상적 삶의 의미는 자유시간 속에서 형성되며 노동은 삶의 의미로부터 분리되고 있다고 이이갸하지만(5), 이러한 주장은 의심스럽다. 적어도 사회적 인정이라는 점에서 노동은 여전히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물론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그런 점에서 호네트의 분석은 아직 유효한 것처럼 보이며, 노동이 아닌 곳에서 각 개인이 자기 삶의 정당성을 찾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모든 것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각종 사회적 구호 속에 노동이라는 윤리적 규범이 갖는 힘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윤리적 규범은 노동을 벗어나 각 개인의 경제적 필요를 돌보는 공동체의 이념을 구성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이는 고통에 찬 타자를 외면하게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규제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의 권리"라는 독일 사민당의 구호는 아직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여전히 앙드레 고로가 지적한 것처럼 독일 사민당의 새로운 프로그램 또한 각 자의 노동이 어떻게 타자의 노동/필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6). 사민당의 프로그램은 오히려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의 변화에 지속적으로 적응해야만 하는 생산과정의 필수적 요소가 아닌 외부적 요소가 되었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전통 속에 이야기되는 생산력의 가장 중요한 원인인 노동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노동자가 더 이상 공동체의 필요에 기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노동자는 자신의 필요충족을 위해 생산시스템 속에 자신의 자리를 구걸하는 위치에 처했있다. 정치/사회는 이제 기업에게 자동화 설비 속에 노동자를 위한 약간의 자리라도 시혜적으로 남겨줄 것을 구걸하거나, 무의미한 발전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의 강화는 정치적 주체가 아닌 관리와 시혜의 대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악셀 호네트는 스위스 한 방송국의 철학 프로그램에서 기본소득운동은 운동의 주체를 호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남점을 갖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운동의 주체는 공동체 속에 자기 자신의 자리에 대한 정치적 재규정으로부터 탄생한다. (그런 점에서 프롤레타리아를 비계급으로부터 구성해내려는 모든 운동은 난점을 갖고 있다.). 비록 기본소득 운동이 시민이라는 이름을 새로운 주체의 이름으로 전유하려 시도해왔지만, 시민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 주체인지 재구성해내지 못한다면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이라는 이름을 전유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시민"과 경제적 필요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해낼 수 있는지도 어려운 숙제이다. 하지만 이는 호네트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의 이념"에 대해서도 똑같이 물어질 수 있다. 노동자 없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1)앙드레 고로, 이현웅 옮김,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서울: 생각의 나무, 105.

(1-1) 같은 책 139.

(2) Karl Marx, Friedrich Engels,  »Deutsche Ideologie«, in: Marx-Engels-Werke(MEW), Bd.3, Berlin 1956, S. 28 ff .

(3) Arendt, Hannah, Vita activa oder Vom tätigen Leben, München: Piper, 2013, S. 103 f, 125; Arendt Hannah, »Tradition and the Modern Age«, in: Hannah Arendt. Kritische Gesamtausgabe, Band.6(The Modern Challenge to Tradition: Fragmente eines Buchs), Göttingen  2018, S 496; Arendt, Hannah, »Vom Hegel zu Marx«, in: Hannah Arendt. Kritische Gesamtausgabe, Band.6(The Modern Challenge to Tradition: Fragmente eines Buchs), Göttingen  2018, S. 98 f.

(4) Honneth, Axel, Die Idee des Sozialismus: Versuch einer Aktualisierung, Berlin: suhrkamp, 2010, S. 35-50.

(5) Gorz, André, übersetzt von Otto Kallscheuer, Kritik der ökonomischen Vernunft, Zürich: Rotbuch, 1998.

(6) 같은책 

고기와 기후

공생 일상| 공생 일상|2019. 4. 18. 04:36

우리가 기후변화를 해결하고 싶다면 우리는 고기 소비를 절반으로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있을까요?

 

Fotos: rawpixel  via unsplash.com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버거는 팔리지 않고 부모는 햄대신 오이와 치즈로 아이들의 샌드위치를 싸줍니다. 짧은 시간 안에 실질적으로 고기 소비는 줄어듭니다. 이것이 채식의 유토피아일까요? 아닙니다, 모든 것은 이미 독일  가운데서 일어났습니다. 2000 11 방송에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번째 독일 광우병 사례를 보고했을  독일 전반에서 식단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지속 가능한 발전은 아니었지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린피스의 농업 변화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2050년까지 고기 소비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년에 80kg 아닌 40kg.

채식주의자 연맹의 추산에 따르면 독일인의 최소 10% 이미 완전히 고기를 먹지 않으며, 하인리히 재단의 고기 아틀라스에 따르면 고기 소비량은 매년 0.5%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나쁘지는 않지만, 이것은 절대 충분하지 않습니다. 필자를 포함하여 독일인의 90% 고기를 포기하지 않는 걸까요?

 

음식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비어기트 (Birgit Hamm) 질문에 오랫동안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마음속으로 비건이라고 하지만 일주일에 이상은 고기 요리를 한다고 합니다. “고기 소비를 줄이는 것은 이성의 문제입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먹는 것에 있어서 본능에 이끌립니다.

 

고기 소비의 학습된 패턴

 

본능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안네리 지페킹(Annelie Sieveking) 뤼네부르크 대학에서 영양 공급의 변화를 연구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냈습니다. “우리의 영양 공급은 정체성과 사회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식단에서 고기의 역할은 이미 어린 시절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연구는 고기가 음식의 익숙한 부분일 그에 따른 미각이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어린 시절의 좋은 경험과 연결되는 음식을 즐겨 먹습니다.” 천성적으로 고기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원인에 대해 논쟁을 합니다. 따뜻한 지역보다 추운 지역에서 많은 고기가 섭취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는 우리 선조들은 열악한 지역에서 많은 칼로리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브레멘 대학의 연구는 고기 소비는 실제로 인간의 진화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석기 시대에 고기는 오늘날보다 훨씬 구하기 어려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기를 매일 소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 것입니다.

 

새로운 주류 제품

 

실제로 중부 북유럽 요리는 20세기까지 강조되었고 특히 야채와 곡류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대부분 사람의 일일 식단은 양배추, 순무 감자로 이루어졌습니다. 부의 증가와 함께 비로소 고기는 식단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산업화된 생산으로 고기는 구하기 쉽고 점점 저렴한 주류 제품이 되었고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수긍하며 살고 있습니다. 독일 영양 협회는 우리가 건강상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주당 최대 허용량인 600g 훨씬 초과하여 고기를 소비한다고 비판합니다. 1960년대 사람들은 지금보다 고기를 먹었습니다. 독일 육류 산업 연방 협회에 따르면 현재 년에 1인당 90kg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1960년에는 60kg이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육식에 길들어 있고 이것은 문제입니다.

 

스스로 테스트해 보세요. 소스가 발라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보다 콜리플라워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채식주의자조차 가끔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고기 대체품으로 두부나 밀고기(seitan) 사용합니다. 독일의 육류 소비에 대한 조사가 대다수의 사람이 높은 육류 소비의 해로운 영향을 알고 있음을 보여줌에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사회학자 지페킹은인지 부조화개념을 여기에 적용합니다. 심리는 우리의 가치와 행동 사이의 차이를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긴장 상태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가끔은 그저 간단하게 외면합니다. 지페킹은더는 간단히 외면할 없도록 우리는 고기 소비가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결과에 자주 직면해야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학생 명은 학사 학위 논문에서 담배의 과격한 경고의 효과를 연구했습니다. 따라서 고기 포장지에도 비교 가능한 정보가 기입되면 지속적으로 육류 소비를 감소시킬 있을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사고방식의 변화?

 

충격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거나. 사회에서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가 성공할 때만 육류 소비는 감소하게 것입니다. 변화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번째 발걸음은 내딛어졌습니다. 독일 최초 비건 교수인 마쿠스 켈러(Markus Keller) 그린피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점점 많은 젊은이들이 비건이나 채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특히오늘날의 15세에서 34 사이의 밀레니엄 세대는 사회적 평균보다 훨씬 적은 고기를 먹습니다”. 그들이 아이가 생기면 지속 가능한 사고방식의 변화는 시작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회적 자극이 필요합니다라고 사회학자 지페킹은 말하며 논쟁의 여지가 있는채식주의의 회상합니다. 모든 대중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정치적 실패로 끝난 기획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많은 구내식당에서 실제로 인식의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구내식당에서 고기를 완전히 사라지게 6000명의 직원이 있는 미국의 회사 “Wework”처럼 그렇게 빨리 달성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의 단계 모두는 주제를 주류로 만들 있는 힘이 있습니다.

 

많은 국가, 적은 로비

 

육식 소비를 줄이는 것은 또한 정치적 의지의 문제입니다라고 비어기트 함은 말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육식업에서의 로비가 여전히 성공적으로 변화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지페킹은 가격 조정 또한 중요할 거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육류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것은 특히 식료품 가격에 민감한 독일인에게 지속적인 자극이 있습니다.

 

저는 기후와의 관련성을 고려해 민간이든, 식당이든, 구내식당이든, 고기 소비를 줄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정부의 제도화된 상담 서비스를 시행하는 것을 상상해 있을 같습니다라고 지페킹은 말합니다. “오늘 에너지 컨설팅 또한 통용되고 있습니다.”

 

음식 전문가 함은 다음과 같이 확신합니다. “모두가 완전히 고기를 먹지 않을 필요는 없지만, 정육점에서 번쯤 생각해 보는 사람은 이제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해결의 일부입니다.” 그런 다음 고기가 들어간 지속적인 식단으로 전환하는 것이 수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야채와 쌀이 주를 이루는 아시아 또는 인도 요리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요리에 고기 포함이 필수로 여겨지는 식문화에서는 고기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음식은 거기에 뭔가 빠져있다고 여겨집니다. 고기가 주를 이루는 요리는 우리 중유럽인들에게도 익숙하고 감자나 브로콜리는 접시에서 분리되어 따로 놓입니다. 그러나 독일 가정식에도 대안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찌개에 소시지나 같은 고기를 조금만 넣는 것입니다.”라고 함은 말합니다. 필자와 같이 여전히 고기 소비를 반으로 줄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여성들을 봐주세요. 오늘날 여성들은 이미 고기 먹는 양을 반으로 줄였습니다.

 

원문: https://enorm-magazin.de/fleisch-und-klima-ausgeschnitzelt

"행동이냐 멸종이냐?" 거리로 나온 활동가들이 묻다

Hartkeks| 뉴스 움벨트|2019. 4. 16. 06:59

기후단체 '멸종저항군(Extinction Rebellion)'이 런던 전역에 활동가들을 동원하여 기후변화에 대한 결정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진: Jonathan Brady/PA

런던 워털루 다리에서 멸종저항군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 활동가들은 앞으로 수 주간 비폭력 저항운동의 일환으로 런던 중심지 다섯 곳을 차단하기로 결정했습다.

 

사진: Tolga Akmen/AFP/Getty Images

시위대가 런던 워털루 다리 한가운데에 꽃을 깔다. 일련의 행위는 '생태기후적 비상사태'에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합니다.

 

사진: Dan Kitwood/Getty Images

멸종저항군의 지지자들은 런던 전역의 여러 지역을 막고 최대 5일 동안 교통을 차단할 계획입니다.

 

사진: Tolga Akmen/AFP/Getty Images

워털루 다리 시위 중 임시 램프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참여자.

 

사진: Jonathan Brady/PA

활동가들은 비폭력 저항운동을 약속했습니다.

 

사진: Henry Nicholls/Reuters

쉘 센터 출입구에 손을 고정시킨 기후변화 활동가.

 

사진: Henry Nicholls/Reuters

활동가들이 쉘 센터 정면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 Ray Tang/Rex/Shutterstock

옥스퍼드 광장을 차단한 활동가들.

 

사진: George Cracknell Wright/Rex/Shutterstock

밴 밑에서 자신들을 스스로 묶은 멸종저항군 활동가들.

 

사진: Daniel Leal-Olivas/AFP/Getty Images

멸종저항군 시위대가 사용한 잉크 도장들.

 

사진: Daniel Leal-Olivas/AFP/Getty Images

옥스퍼드 광장에서 분홍색 배 주위에 모여있는 멸종저항군 시위대를 내려다본 사진.

 

사진: Leon Neal/Getty Images

배는 교차로의 중앙에 배치됐습니다.

 

사진: Peter Nicholls/Reuters

한 참여자의 손피켓. "지금 행진하거나 나중에 수영하거나."

 

원문보기: Action or Extinction? Environmental activists take to the streets (2019.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