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의 개념들에 해당하는 글 1

노동(Arbeit)-노동의 위기와 사회주의 이념의 위기(1)

가아닌양| 정치철학의 개념들|2019. 4. 20. 07:04

노동(Arbeit)-노동의 위기와 사회주의 이념의 위기

 

앙드레 고로

 

»사회주의의 위기는 무엇보다 프롤레타리아의 위기다. 다양한 능력 다양한 능력을 보유한 전문기술 노동자들, 곧 자신의 생산적 일을 할 수 있는 주체, 따라서 사회관계들을 혁명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는 그 노동자들과 더불어, 사회주의적 프로젝트를 책임질 수 있고 이 프로젝트를 현실화할 수 있는 계급은 사라졌다. 사회주의의 이론과 실천이 퇴락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그 이유 때문이다.«(1)

 

앙드레 고로가 자신의 저서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을 통해 전통적인 노동자 중심의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주의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지 30여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는 기술의 발전이 기존의 노동자계급을 해체시켰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과 전복이 노동자-자본가의 대립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1960년대 서구사회에서 이미 시작된 전통적 노동자계급에  속하지 않은 비계급(정규직-노동자에 속하지 않은 사람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 비계급은 이미 정치의 출발부터 존재해왔다.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예를 랑시에르가 고대 그리스 시민국가와 농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불화")의 증가는(우리가 흔히 비정규직의 증가라고 이야기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식한 문제가 된지 오래지만, 노동의 위기와 노동자계급의 해체에 대한 담론은 여전히 대안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그리고 앙드레 고로가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에서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국가와 사회는 여전히 불필요한 노동을 생산해내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물론 30년 동안 아무런 대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을 안정적인 어떠한 계급에도 속하지 않은 비계급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해석하려 시도 했으며, 기본소득과 같이 기존 사회주의 이념과 충돌하는 대안이 이제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고로가 이야기한 불필요한 노동-생산관계로부터의 해방은 여전히 요원한 일인것처럼 보인다. 불필요한 노동자들의 생산은 여전히 국가와 사회의 주요 과제이며, 비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필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활동을 노동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두가 노동자가 된, 모든 활동이 노동으로 환원되는 대중사회가 사회주의 이념의 종말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아렌트의 주장은 노동자계급이 해체되었다는 고로의 주장과 정 반대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렌트의 주장 또한 모두가 노동자가 되면서 특수한 계급으로서 사회변역의 주체가 되는 노동자계급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편 앙드레 고로는 프롤레타리아를 호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페미니즘을 기존의 노동-생산 관계를 전복하는 가장 뛰어난 운동으로 호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여성적인 활동(비 생산적 활동)전자본주의 시대의 잔해이기는 커녕, 반대로 후기자본주의의와 후기산업사회의 문화와 문명을 예고한다.“(1-1) 페미니즘은 사회적운동을 노동-생산관계로부터 새로운 관계, 자본과 다른 관계의 문제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기존 가부장적 시대에 여성들이 하던 활동은 경제생산관계에 종속된 한에서만 억압적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탄생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도 사회주의 이념의 붕괴는 심각한 어려움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사회주의 이념의 붕괴는 생존, 삶을 위한 경제적 필요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의 붕괴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전통적으로 사회주의는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해결하기 위한 이념을 제공해왔다. 사회주의가 제공하는 공동체 이념을 대처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안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생존과 삶을 위한 경제적 필요의 측면에서, 국가라는 거대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간편한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의 새로운 시도는 여전히 구시대의 이념을 붙잡고 있는 사회주의 정당의 마지막 외침처럼 들린다. 

 

»Deutschland ist und bleibt eine Arbeitsgesellschaft. Durch den technologischen Wandel wird uns die Arbeit nicht ausgehen, sie wird sich nur stark und immer schneller verändern. Unsere Antwort darauf ist das „Recht auf Arbeit“. Das bedeutet, dass sich die Solidargemeinschaft dazu verpflichtet, sich um jeden Einzelnen zu kümmern und jedem Arbeit und Teilhabe zu ermöglichen – statt sich durch ein bedingungsloses Grundeinkommen von dieser Verantwortung freizukaufen. (Arbeit – Solidarität – Menschlichkeit: Ein neuer Sozialstaat für eine neue Zeit, SPD)

 

독일은 지금까지 노동자사회였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기술의 변화를 통해 노동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가 퇴색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단지 노동의 변화가 강력하고 점점 빠르게 일어날 뿐이다이러한 변화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노동의 권리“이다이는 기본소득과 같은 것을 통해 이러한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 연대사회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연대사회는 각 개인을 돌보고 그들에게 노동과 사회적 몫을 보장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노동-연대-인간성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사회국가독일 사회민주당

 

위 인용문은 2018 2 10일 독일 사회민주당이 발표한 새로운 개혁안의 일부이다“노동-연대-인간성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사회국가”라는 제목을 단 17장짜리 합의문은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는 사민당이 새로운 반전을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독일사회는 지표상의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실업급여화의 약화로 인해 인해 과거 사회국가(Sozialstaat)가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안정감을 상실했다. 이는 또한 전통적인 임금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민주당이 몰락하는 원인이 되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 참조https://umweltkorea.tistory.com/10?category=787270). 하지만 사회민주당에게도 변명은 있다. 사회민주당은 더 많은 노동을 생한해내는 것 외에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목표하는 것처럼 더 많은 일자리가 생산되었고, 국가의 생산력은 증가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이 경제적 필요의 충족이라는 점에서 악화되었다. 그리고 사민당은(사민당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 원인을 안정적인 노동을 생산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 따라서 이번 개혁안에 담긴 사민당의 목표는 안정적인 노동자계급을 재구성하기 위한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사민당은 사회국가의 재구성을 위해 “노동”과 “노동을 통한 사회적 몫”의 보장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그리고 노동사회를 부정하는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안정적인 노동시장의 창출과 이에 걸맞는 노동자들의 교육이라는 사회국가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하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이미 과거의 노동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반증한다위 인용문에 등장하는 것처럼 기술의 변화는 노동이 갖고 있는 성격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따라서 과거와 같이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 일자리 개념은 사회의 발전과 공존할 수 없다따라서 실업과 노동을 위한 재교육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활동이 될 수밖에 없다(이는 사민당의 개혁안 속에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이라는 이념 위에 자리하고 있는 사민당은 “비노동” 상태를 예외상태로 “노동”을 일상의 상태로 구성해야만 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처럼 “비노동”을 일상의 상태로 인정하는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비노동”의 기간은 노동을 위한 준비기간이다.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통 속에서 “노동”은 인류와 역사발전의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인간을 역사 창조의 주체로 존재로 만들어준다(2).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산업 혁명과 프랑스 혁명이후 과거처럼 귀족이나 특정 계급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서 국가와 사회의 원리를 도출해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이제 국가와 사회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신들의 원리를 도출해내야 한다그리고 그것이 노동이다마르크스는 이러한 세계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포착했다(3). 하지만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의 전통 속에서 노동이 사회 변화의 원동력으로서의 의미 뿐 아니라공동체 구성의 규범적 원리로서 작동한다악섹 호네트는 „사회주의의 이념(Die Idee des Sozialismus, 한국어 제목사회주의 재발명)“을 통해 사회적 연대의 기초로서 노동이 가지고 있는 규범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자본주의의 또한 노동에 기초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의 노동은 자기실현과 자기 이익의 관철을 목표로 한다따라서 타자의 노동이 갖는 목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에 반해 사회주의의 이념 속에 노동은 타자를 포함하고 있다각 개인은 자신의 노동 가운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발현 뿐 아니라타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발현을 목적으로 가져야만 한다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노동은 내 자신의 필요와 욕구 뿐 아니라타자의 필요와 욕구를  인정한다따라서 나의 노동은 나와 타자의 필요를 충족 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4). 호네트에 따르면 노동을 통한 상호적 인정은  사회주의의 이념 속에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윤리적 규범이기도 하다.

 

노동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윤리적 규범이라는 것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각 개인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노동이라는 개념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노동을 통해 성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윤리적이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로부터 도출한 것처럼 직업은 현대인에게 지상적 삶을 보증한다.  비록 앙드레 고로가 인간의 일상적 삶이 노동으로부터 분리되고 있다고, 일상적 삶의 의미는 자유시간 속에서 형성되며 노동은 삶의 의미로부터 분리되고 있다고 이이갸하지만(5), 이러한 주장은 의심스럽다. 적어도 사회적 인정이라는 점에서 노동은 여전히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물론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그런 점에서 호네트의 분석은 아직 유효한 것처럼 보이며, 노동이 아닌 곳에서 각 개인이 자기 삶의 정당성을 찾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모든 것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각종 사회적 구호 속에 노동이라는 윤리적 규범이 갖는 힘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윤리적 규범은 노동을 벗어나 각 개인의 경제적 필요를 돌보는 공동체의 이념을 구성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이는 고통에 찬 타자를 외면하게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규제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의 권리"라는 독일 사민당의 구호는 아직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여전히 앙드레 고로가 지적한 것처럼 독일 사민당의 새로운 프로그램 또한 각 자의 노동이 어떻게 타자의 노동/필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6). 사민당의 프로그램은 오히려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의 변화에 지속적으로 적응해야만 하는 생산과정의 필수적 요소가 아닌 외부적 요소가 되었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전통 속에 이야기되는 생산력의 가장 중요한 원인인 노동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노동자가 더 이상 공동체의 필요에 기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노동자는 자신의 필요충족을 위해 생산시스템 속에 자신의 자리를 구걸하는 위치에 처했있다. 정치/사회는 이제 기업에게 자동화 설비 속에 노동자를 위한 약간의 자리라도 시혜적으로 남겨줄 것을 구걸하거나, 무의미한 발전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의 강화는 정치적 주체가 아닌 관리와 시혜의 대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악셀 호네트는 스위스 한 방송국의 철학 프로그램에서 기본소득운동은 운동의 주체를 호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남점을 갖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운동의 주체는 공동체 속에 자기 자신의 자리에 대한 정치적 재규정으로부터 탄생한다. (그런 점에서 프롤레타리아를 비계급으로부터 구성해내려는 모든 운동은 난점을 갖고 있다.). 비록 기본소득 운동이 시민이라는 이름을 새로운 주체의 이름으로 전유하려 시도해왔지만, 시민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 주체인지 재구성해내지 못한다면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이라는 이름을 전유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시민"과 경제적 필요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해낼 수 있는지도 어려운 숙제이다. 하지만 이는 호네트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의 이념"에 대해서도 똑같이 물어질 수 있다. 노동자 없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1)앙드레 고로, 이현웅 옮김,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서울: 생각의 나무, 105.

(1-1) 같은 책 139.

(2) Karl Marx, Friedrich Engels,  »Deutsche Ideologie«, in: Marx-Engels-Werke(MEW), Bd.3, Berlin 1956, S. 28 ff .

(3) Arendt, Hannah, Vita activa oder Vom tätigen Leben, München: Piper, 2013, S. 103 f, 125; Arendt Hannah, »Tradition and the Modern Age«, in: Hannah Arendt. Kritische Gesamtausgabe, Band.6(The Modern Challenge to Tradition: Fragmente eines Buchs), Göttingen  2018, S 496; Arendt, Hannah, »Vom Hegel zu Marx«, in: Hannah Arendt. Kritische Gesamtausgabe, Band.6(The Modern Challenge to Tradition: Fragmente eines Buchs), Göttingen  2018, S. 98 f.

(4) Honneth, Axel, Die Idee des Sozialismus: Versuch einer Aktualisierung, Berlin: suhrkamp, 2010, S. 35-50.

(5) Gorz, André, übersetzt von Otto Kallscheuer, Kritik der ökonomischen Vernunft, Zürich: Rotbuch, 1998.

(6) 같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