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본법과 독일의 민주주의 (1)

가아닌양| 독일 뉴스 길게 읽기|2019. 5. 18. 06:04

194958일 탄생한 독일연방의 기본법(Grundgesetz)은 제2차세계대전의 패배와 분단이라는 특수한 역사정 상황으로부터 탄생했다. 올해로 탄생 70주년을 맞이한 기본법은 헌법의 역할을 하지만 헌법(Verfassung)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기본법은 세계2차대전의 패배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연합군 군사점령 체제 서독의 각 주로부터 임명된 11명의 법학자들이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 지역에 위치한 호수 킴제(Chiemsee)의 한 섬에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법은 본의 자연사박물관에서 각 주에서 임명된 65명의 대표들에 의해 통과되었다. 이 법의 탄생에 소련군의 지배 하에 있었던 지역들은 참여하지 않았으며, 당시에는 누구도 이 법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법은 완결된 형태의 이름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헌법 대신 기본법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독일 기본법은 새로운 국가 건립이라는 열망이 아니라 역사적 폐허로부터 탄생했다. 더 이상 과거는 새로운 국가의 기초가 될 수 없고 죽은 것이 되어야 했다. 독일을 점령하고 있던 서구동맹 뿐 아니라 독일인 스스로 자신을 불신해야만 했다. 슈피겔지에 등장한 표현에따르면 독일 기본법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과 히틀러 정권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경험의 반정립으로서 탄생했다. 이는 독일인들이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해 인민(Volk)의 힘을 신성화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독일민족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주체인 인민 또한 불신의 대상이다. 기본법은 인민으로부터 탄생하지 않았다. 기본법은 각 주의 대표들과 법학자들의 토론으로부터, 주 대표들로 구성된 평의회의 결정을 통해 통과 되었다. 각 주의 동의를 받아야했지만 전체 주 가운데 2/3의 동의만이 필요했다. 바이에른만이 새로운 기본법을 반대했다. 그리고 기본법은 정해진 룰에 따라 법은 통과되었다.

 

올해는 기본법 탄생 70주년이기도 하지만 바이마르 헌법( Weimarer Verfassung)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 바이마르헌법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11월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탄생했다. 독일 최초의 민주주의 헌법인 바이마르헌법은 기본법과 달리 여성을 포함한 인민의 투표를 통해 선발된 제헌의회에 의해 만들어졌다. 바이마르헌법은 공화국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태어났고, 공화국의 주체인 인민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성한다. 바이마르 헌법 1 1독일제국은 공화국이다 2국가()권력은 인민(Volk)으로부터 나온다는 국가권력의 원천을 규정한다. 바이마르 헌법 뿐 아니라 많은 경우 헌법의 1조는 국가구성에 대한 원천, 혹은 정당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출발하고 있다.

 

이에 반해 독일 기본법 1조는 마치 인권선언문처럼 시작한다. 1인간의 존엄은 불가침한 것이다. 이것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 권력의 의무이다(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 Sie zu achten und zu schützen ist Verpflichtung aller staatlichen Gewalt.).“, 2따라서 독일 인민은 불가침하고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를 시인한다. 이는 세계 모든 인간공동체와 평화 그리고 정의의 기초이다(Das Deutsche Volk bekennt sich darum zu unverletzlichen und unveräußerlichen Menschenrechten als Grundlage jeder menschlichen Gemeinschaft, des Friedens und der Gerechtigkeit in der Welt.).“ 독일 기본법이 인간의 권리에서 시작한다고 해서 혁명의 시대에 만들어졌던 선언문과 같은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1789년에 만들어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인간이 가진 평등한 권리로부터 프랑스 인민이 갖는 시민으로서의 평등한 권리를 도출했다면, 독일의 기본법은 인간의 권리로부터 독일연방과 독일 인민이 침해할 수 없는 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바이마르헌법은 그 시대 가장 발달된 민주주의 헌법 중 하나였지만 히틀러의 나치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나치의 인종주의는 수 많은 생명들을 빼앗아갔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험은 더 많은 투표가 공화국과 공화국의 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바이마르공화국의 인민들은 의회뿐 아니라 대통령 투표로 선출했다. 의회는 입법권을 가지고 있었고 내각을 구성했지만 대통령 또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은 총리 임명권, 의회 해산권, 긴급명령권을 가지고 있었다. 의회는 대립이 발생했을 때 타협보다는 대통령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편을 택했다. 위기가 발생할 때면 조기선거가 실시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는 평균 2년을 넘기지 못했으며, 1기 의회가 구성된 1920년 부터 1933년까지 8회의 의회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 속에 히틀러는 합법적으로 총리가 되었다.

 

독일 기본법은 불안정한 민주주의와 그 민주주의를 작동시켰던 독일 인민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탄생했다. 대중은 너무 쉽게 유혹당한다. 기본법을 만든 65명의 재헌의회 의원들은 인민보다는 제도를 신뢰했으며, 정치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바이마르 헌법과 비교해서 기본법은 정당의 역할을 강조한다. 기본법 21 1항은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지 형성에 함께 영향을 준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바이마르 헌법이 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조기 선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반면,  기본법은 정치적 위기를 정치인들이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기본법 67조는 연방의회는 총리에 대한 불신임을 오직 연방의회가 의원 다수의 동의를 통해 새로운 총리를 지명했을 때만 행사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기본법은 정부에 대한 불신임을 구조적으로 최대한 어렵게 만들었다. 기본법 아래서 연방정부는 평균 45개월 유지되었다. 이는 바이마르 공화국보다 2년이 더 길다. 독일연방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민주주의 정권에 속한다.  

 

 

'독일 뉴스 길게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 기본법과 독일의 민주주의 (2)  (0) 2019.06.01